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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지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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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지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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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동희
출판사
흐름출판사
분야
평론
페이지
322쪽
출판일
2016년 3월 14일
ISBN/ISSN
979-11-5522-089-4 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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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소개
시의 지문1 : 우리 시조의 재발견

산책로를 걷듯 부담 없이 사색하는 시 읽기

50여 편의 명 시조를 통해 삶의 지혜와 철학을 통찰하다.

지문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희곡에서, 해설과 대사 이외의 부분으로 등장인물의 동작이나 표정, 심리, 말투 등을 서술한 글이며, 문제 풀이의 바탕이 되도록 주어진 글 혹은 손가락 안쪽의 끝에 있는 살갗의 무늬를 말한다. 한 단어 안에도 이렇듯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시’는 말할 것도 없다.
시와 소설을 평론하는 작가는 시의 일상화와 대중화를 좀 더 진전시킬 수 있길 바랐다. 그리하여 2006년부터 2년여 간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에 연재한 「이동희의 명시 산책」을 다듬고 묶어 독자를 만나게 되었다. 명시 산책 첫해 1회부터 50회까지는 ‘우리 시조의 재발견’을, 둘째 해 51회부터 100회까지는 ‘우리 현대시의 재발견’을 산책의 소재로 삼아 집중 조명하였다.

1권에는 50여 편의 시조와 더불어 옛 시인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시조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쓰였다. 현대인의 일상적인 삶과 시조와의 연결고리를 찾아, 그 순간을 포착하고 담아내는 솜씨에서 노련미가 느껴진다.
작가는 2008년 한 인터뷰에서 “문학은 사람살이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갖고 재산이 많다한들 사람살이에 역행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냐며 자신의 문학관을 피력했다. 󰡔시의 지문󰡕은 일반 독자에게 해독할 수 없는 문제처럼 느껴지는 시조 해석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시행에 숨은 조상들의 심리와 표정, 동작을 추적하여 드러내줌으로써 문자로만 박제되어 있던 시조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본문 속으로│

(「처용가」는)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879) 처용이 역신(疫神)을 쫓기 위해 지어 부른 8구체 향가로 된 주술적 무가(巫歌)다.…천년을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왔던 신라의 사내 처용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뜻 깊은 아름다움은 식을 줄 모른다. 도교와 불교까지도 토속신앙으로 묶어내는 배경 사상의 다양성으로, 인간이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정신력으로서의 관용성으로, 주술적 무가에 담긴 사랑의 진정성으로, 그리고 사랑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으로 우리의 서정을 뜨겁게 한다.

 - 33~37p



임제의 시처럼 시어가 조금도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 다의적인 함의를 온전하게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한우 그대가 있는 평양에 나 임제는 아무 대책(우장) 없이 간다. 갖춘 것이 있다면 명인을 알아보는 시인의 안목과 그 안목을 박대하지 않으리라는 그대의 문명(文名)을 믿는 나의 소신뿐. 그대를 만나는 길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눈/찬비)도 안다. 그러나 끝내는 그대와 어우러져(얼어 잘까)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찬비를 맞았으니 얼어 자게 되겠지만, 그 찬비는 뜨거운 열정을 온몸으로 간직하고 있는 천하의 명기 한우가 아닌가! 얼어 자지만 그 ‘얼다’는 냉동(冷凍)의 의미와 함께 ‘교접하다’는 함의를 지닌 고어가 아닌가! 그러니 ‘찬비를 맞아 얼어 잔다’는 것은 그대로 ‘뜨거운 사랑을 만나 녹아 잔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뜨거운 시정처럼 틀림없이 사랑의 열정을 지녔을 그대를 만나 만리장성을 쌓고 싶다는 메시지다. 은근하지만 추하지 않고, 열정적이지만 무모하지 않은 사랑의 메시지라 아니할 수 없다.

- 141p



뭇 생명들이 화창한 봄을 가려 생명작용을 하건만 매화는 일 년 사시사철 중에서 가장 가혹한 겨울, 그것도 차가운 눈이 솜옷을 입히는 겨울을 가려 생명작용을 한다.…가장 가혹한 계절에 이루는 사랑이므로 매화는 애써 향기를 팔려 하지 않는다. 구차하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는다.
눈 속의 매화는 그렇게 침묵의 언어로 기도할 줄 아는 성인군자다. 제 뜻을 이루기 위해 혹한에도 뜻을 피울 줄 아는 꽃 중의 꽃이요, 모진 시련에도 결코 신음하지 않고 침묵으로 기원을 세울 줄 아는 나무 중의 나무다.…제 홀로 눈서리 속에 있어도 뭍 생명에게 제일 먼저 봄소식을 전하며, 침묵 속에서 다져진 기도로 널리 이로운 향기를 피우지 않던가? 그래서 매화는 보춘의 꽃이요, 그래서 매화는 문향을 피우는 향기다.

- 317~31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