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경계에서 더욱 빛나는 신념 미국과 유럽 수십만 독자에게 감동을 준 그 책! 2차세계대전의 전쟁터에서 수도자 위생병이 체험한 위로의 빛
일본에서 온 선교사를 보고 ‘극동의 신기한 나라’를 꿈꾸던 소년은, 30여년이 지난 뒤에 실제로 사제가 되어 일본 도쿄의 이타바시에서 사목생활을 하게 된다. 전후 가난했던 시절, 신부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넝마주이로 미군이 버린 쓰레기를 치우다 자연스럽게 미군과 친분을 갖게 된다. 그들은 사제에게 2차세계대전과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사제는 요청에 따라 미군과 일본의 여러 도시에서 강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도 이 체험을 강연한 적이 있다. 하마터면 개인의 ‘한 때의 경험’으로 치부될 뻔했던 이야기는 강연을 통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게레온 골드만(P. Gereon Goldmann) 신부이다. 독일의 풀다에서 태어난 신부는 2차세계대전 발발을 계기로 나치 친위대에 배속되어 룩셈부르크-벨기에-프랑스-러시아-이탈리아-알제리-모로코에서 다시 이탈리아-프랑스를 거쳐 독일로 돌아오는 긴 여정을 하게된다. 『님의 그늘 아래』는 게레온 골드만 신부가 참혹했던 전쟁의 터널을 지나온 회고록으로 수십만의 독자에게 감동을 준 책이다. 한 사람의 일대기이지만, 한 편의 소설로 읽어도 무방하다. 그가 겪은 삶의 질곡 자체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때로는 재치와 극적인 만남, 신의 도움(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으로 그 지옥과도 같은 전쟁터와 포로 수용소의 죽음의 위협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경이로운 경험을 보게 된다. 간결하고 단순한 언어로 파란만장한 삶에서 체험한 섭리를 박진감 넘치고도 재미있게 고백하고 있다.
그는 전쟁 중에 “사람 죽이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누구에게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 또한 처한 상황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타개 한다. 나치의 세계관에 반하는 언사로 배척당하면서도 그들의 논리를 반박하고 자신의 갖은 인류애적 철학을 피력한다. 게레온 골드만은 책의 말미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이루어지리라. 하느님께서는 어떤 기도도 응답 없이 두시지 않으신다’ 내 삶은 이 말의 산 증언이다”라고 적었다. 언뜻 보기에 그는 사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저돌적이고 강직한 성품이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여러 사제가 존재한다는 당위성을 그는 보여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명구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일 것이다.
│본문 속으로│
“소송 제기인의 세계관에 대해 보고서를 제출하라!” 이제 내 색깔을 밝혀야 했다. 정면으로 대결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이를 위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주일간 휴가를 얻었다. 이 기간 동안 8장이나 되는 장문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첫 줄이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나치사회주의와 친위대의 세계관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음을…” (중략) 나는 혼자 서명했다.…힘믈러가 직접 서명한 답장이었다. 그가 직접 내가 보낸 장문의 보고서를 읽어 본 것이다. 친위대에 대한 불명예로 좌천되어 방위군으로 축출된다고 하였다! 아주 잘된 결과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우리 부대가 네덜란드에 주둔하는 동안 나는 친위대에서 축출되었고 누구의 동행도 없이 여행하게 되었다. 신학생들은 부대와 함께 러시아로 가 레닌그라드 가까이에서 전사했다. 부상으로 고향에 돌아온 전우가 후에 말해 준 바에 의하면, 그들은 의도적으로 전방에 총알받이로 내세워졌다고 했다…. 그들이 그때 서명했더라면!
- 74p
이제는 정말 지옥문이 열렸다. 그전에 지하 앞방이 뜨뜻한 피와 찢어진 몸뚱이로 가득했을 때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끔찍한 곳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뒤를 이은 것은 바로 지옥 그 자체였다. 움직이는 모두가 2m 높이에 세로 4m, 폭이 3m 정도 넓은 뒤쪽 잔은 방으로 몰려들었다. 죽음보다 더한 절망과 심한 부상에서 오는 죽음의 공포가 강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들은 서로 내리누르고, 찌르고, 내리밟고, 하나가 다른 위에 누워 아래는 숨이 막히고, 얼마나 좁고 빽빽하던지 끝내는 방 전체가 천장까지 가득 찼고, 사람들은 피 흘리고, 소리 지르고, 숨 쉴 구멍을 찾았다.
- 217p
그는 칼과 칼집, 철모를 바닥에 내던지고, 내 손을 쇠붙이 같은 힘으로 움켜쥐고 숨을 헐떡였다. “신부님, 고해하고 싶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고, 그의 단단한 손아귀가 너무 아파 온몸을 실룩거리면서 그가 미쳤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 팔을 얼마나 움켜쥐었든지 아파서 소리를 지를 지경이었는데, 다시 재촉했다. “고해하겠소! 지금 당장!” 내가 말을 건넸다. “여기 메크네스에는 당신을 위해 여러 분의 프랑스인 사제가 계십니다.” “아닙니다. 당신에게 고해하고 싶습니다.” “왜 하필, 얼마 후에 나를 총살해야 하는 당신이?” “바로 그 때문에, 당신은 얼마 후에 천국으로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몇 년 동안 하지 못한 고해성사를 청했다. 이제 마침내 성사 볼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중략) 며칠 후에 우리 착한 보나벤투라 신부가 기쁨에 넘친 얼굴로 찾아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야기했다. 파리에서 전화가 와서, 교황님이 로마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에다가 당신이 친히 사제품에 추천한 독일 병사를 왜 죽이려고 하느냐고 항의했다고 했다. 로마에서 온 이 전화 때문에 파리에 있는 포로들을 위한 중앙사무실에서는 부랴부랴 나를 찾았고, 바로 사형 집행 전날 밤에 찾아냈다고 했다. 장교의 긴 고해가 없었다면 너무 늦었을 뻔했다.
- 334~336p
│저자소개│
게레온 골드만 작은형제회 신부(P. Gereon Goldmann OFM) 1916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풀다와 쾰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톨릭 청년회에서 활동하다 1936년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였다. 139년 8월에 수도회 신학교에서 철학 과정을 마쳤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던 1939년 9월부터 1947년 여름까지 군인의 신분이었다. 처음에는 나치친위대 경찰군으로 있다가 후에 방위군으로 복무했다. 1944년 포로로 잡혔고, 그해 알제리의 포로수용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47년까지 북아프리카의 전쟁 포로수용소에서 사목했다.
1948부터 독일에서 본당 사목 및 청소년 사목을 하다가, 1954년 1월부터 40년간 일본에서 사목한 후 독일로 돌아왔다. 2003년 7월 26일 풀다 수도원에서 87세 일기로 선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