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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 묻힌 선조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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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 묻힌 선조들의 삶
저자
이상균
펴낸날
2017년 3월 6일
정가
원
할인가
원
페이지
320쪽
출판사
흐름출판사
ISBN/ISSN
979-11-5522-122-8 9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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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기록되지 못한 미지의 역사, 고고학의 눈으로 복원하다


‘흥수아이’는 청주 두루봉 동굴 유적에서 김흥수 씨가 발견한 구석기시대 인류화석이다. 김흥수 씨는 유골 발견을 알릴 경우 자신의 광산이 폐광됨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실을 알렸다. 그 뜻을 기려 발견자의 이름을 따 ‘흥수아이’가 되었다. 유골의 체질상 특징으로 보아 약 4만 년 전에 살았던 ‘늦은 시기의 현생인(Homosapiens)’에 속하며, 연구가 더 진행된다면 구석기인의 이동과 우리 조상의 기원에 대한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는 고리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흥수아이’는 또 동굴 조사 시에 인골 주변의 토양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가슴 부위에서 들국화 종류의 꽃가루가 다량으로 검출되었다. 이것은 후기 구석기시대에 이미 장례 의식이 있었음을 반증한다.


이처럼 고고학은 물질적 자료를 기초로 인류의 역사를 규명하려는 학문이다. 저자는 ‘고고학은 어떠한 학문인가’를 물었을 때 원시시대와 같은 먼 옛날의 것을 연구하는 것이라든지 보물을 찾는 흥밋거리로 여겨지는 시선을 경계한다. 그는 『흙 속에 묻힌 선조들의 삶』 서문에서 “고고학과 관련된 내용을 강의하면서 늘 교재의 필요성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고고학 입문과 한국 고고학의 개요에 대하여 기술”하겠다는 출간 의도를 밝혔다.


앞선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고고학의 연구 범위와 대상은 인류가 거주한 모든 지역과 그 흔적을 다루기 때문에 복잡하고 다양하다. 연대상으로 보면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서 현재까지의 전 기간, 즉 50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른다. 우리나라에 한정시켰을 경우, 연구 범위 하한은 대개 1950년대 한국전쟁까지이다. 먼 미래에는 우주 탐사, 남·북극 탐험, 통신위성 등의 과학적 산물도 고고학 연구에 포함되리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책은 고고학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돕는 장으로 시작하여 구석기·신석기·청동기·원삼국시대까지의 흐름과 생활상을 담고 있다. 다양한 사례를 인용하였고, 유물과 도면의 사진을 다수 수록하여 구체적인 이해를 도왔다.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예를 들어, 남해안 등지에서 출토된 남성의 인골에서 잠수생활을 장기간 할 경우 나타나는 외이도 골종(外耳道骨腫)이 발견되었다. 이로써 당시 잠수어업이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현재 제주도나 남해안에서 활동 중인 해녀들에게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문헌 기록에 의지하지 않고 유구를 통해 인류 활동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은 어렵지만, 익산 미륵사지석탑의 경우에서 보듯이 문헌의 신뢰성을 비판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실제로 석탑 해체 과정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의 명문은 『삼국유사』 속 선화공주 설화를 뒤엎는 것이라 주목을 받았다.


쓸모를 다하고 매장된 물건들이, 이미 오래전 이 땅에서 사라진 인간의 삶을 복원하는 재료로써 되살아나는 과정은 놀랍기까지 하다. 최고 500만 년 전의 인류와 조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고고학은 충분히 대중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고고학의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으려는 입문자에게, 『흙 속에 묻힌 선조들의 삶』은 현재를 살고 있는 당신을 과거로 데려다 줄 입문서가 될 것이다.



│본문 속으로│


우리나라에서 화산재층이 퇴적된 화산으로는 백두산 천지, 한라산 백록담, 울릉도 성인봉이 있다. 이중 10세기 중반 두 차례에 걸쳐 폭발한 것으로 기록된 백두산은 많은 양의 화산재를 분출하였으며, 발해 멸망의 원인이 된 것으로도 보고 있다. 이 백두산의 화산재는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나 도호쿠東北 지방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일본 역사고고학의 층위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39p


두루봉 흥수굴에서는 인골 2구가 출토되었으며, 그중에 1호 인골은 앙와신전장仰臥伸展葬의 상태로 완전하게 남아 있었다.〈사진2-16〉 1호 인골은 5살 정도이며, 두개골 용량 1,200∼1,300㏄, 신장은 110∼120㎝ 정도이다. 시기는 4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동굴 조사 시에 인골 주변의 토양을 채취하여 화분분석花粉分析한 결과, 가슴 부위에서 들국화 종류의 꽃가루가 다량으로 검출되었다. 따라서 흥수 아이가 죽은 시점은 가을이며, 후기구석기시대에도 장례 의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8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