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미디어가 보여주는 순교의 이미지는 연극적이다. 무대 위에 오른 한 사람이 있다. 모진 고문도 믿음 앞에서 무용지물이며, 고통은 오히려 그가 천상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잔혹한 방식의 죽음이 이루어지고, 비참한 몰골의 인간은 고결한 표정으로 하느님을 만나러 간다. 그러나 저자는 이 익숙한 서사가 순교에 관한 단편적인 부분임을 직시하였다. 또한 저자는 정형화된 순교자의 모습에 대해 종래 시복과 현양 작업은 순교자에 대한 인상이 ‘고문과 형벌’, ‘고통과 죽음’ 등의 단어들이 한 쌍으로 여겨지도록 만듦으로써 순교자에 대해 거리감을 형성한 것으로 보았다.
한국천주교회는 1784년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이후 100여 년 동안 수많은 박해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신자가 순교의 길을 걸어갔다. 순교자들은 계속되는 박해 속에서도 신앙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한국천주교회는 세 번의 시복식과 한 번의 시성식을 통해 박해시기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한 이들을 성인과 복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더불어 해방 이후 순교자현양과 관련한 수많은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성지를 개발하고 순교 기념비와 현양탑 등을 통해 순교자의 덕행을 현양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 가운데 박해시기 순교자들에 대해서 그들이 처한 최후의 모습, 고문과 고통, 처형과 죽음을 지나치게 강조함은 신자들로 하여금 순교의 현장성만을 부각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순교는 죽음에 직면하여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침으로써 주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순교는 향주삼덕이 지니는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있으며, ‘죽음’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또한 저자는 본문에서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순교자신심과 순교자현양의 역사를 고찰하였다. 특히 순교자현양운동의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일제강점기 거행된 시복식 전후로 순교복자들과 관련한 제반 내용에는 그들의 영웅적 모습만을 강조함으로써 신앙인들이 순교자신심을 통해 순교복자의 삶과 신앙 안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축소시킨 것으로 보았다. 또한 교회는 신자들에게 시성을 위한 기적 청원을 강조함으로 순교자신심 자체가 현세구복적 행위로 비추어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겼음을 주목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오늘날까지도 신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고 보았다.
『순교, 생명을 대변하는 증거』는 한국천주교회가 순교자신심과 순교자현양운동 속에서 통찰하지 못했던 순교자의 삶과 신앙을 폭넓게 주목할 수 있는 안내서다. 역사방법론을 사용하여 관련 사료들을 최대한 많이 수집하고, 이렇게 수집한 사료들을 주제별로 분류하였다. 특히 교회사 사건을 찾아 신학적인 분석을 더한 후 의미를 도출하고자 하였다. 25페이지에 이르는 참고문헌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료에 남아있는 교회사 사건을 망라하였기 때문에 한국 천주교회사의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끝으로 ‘삶’과 ‘신앙’을 통해 증거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당대 신자들이 본받아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는 순교자들이 생명까지 내놓으며 증거한 하느님 신앙에 대한 확신과 이웃 사랑에 대한 실천의 가치를 본받아 향주삼덕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올바른 순교자신심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 가는 노력, 그 자체가 된다. 저자는 순교자현양운동이 단지 행사로만 머물지 않는다면, 앞으로 올바른 순교자신심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예수의 생애와 죽음을 묵상하며 성지 예루살렘을 방문한 순례자처럼, 순교 성지에서 일어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다시금 마음속에 되새기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상기하는 실천적 순례를 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강석진 요셉 신부
1988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입회하여 1998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2017년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연구논문으로 <근대 한국 교회의 순교자 신심>, <제물진두 순교자 행적과 순교자 영성>, <19세기 조선 교회 순교자들의 삶과 영성>, <박해시대 이윤하 가족의 신앙생활과 순교> 등이 있다.
들어가며
1. 순교에 대한 이해
2. 신심에 대한 이해
3. 순교자신심과 순교자현양의 이해
연구를 시작하며
1. 문제 제기
2. 연구사 검토
3. 연구의 범위와 방법
4. 연구의 목적
1부 : 순교와 순교자의 신앙 실천-순교와 순교적 삶
1. 1791년 박해와 순교자신심의 시작
2. 순교자의 삶과 신앙
2부 : 순교자에 대한 기억-순교자신심의 확신
1. 개항 이후 교회 재건과 순교자신심
2. 근대 조선 천주교회 순교자신심과 순교자현양
3부 : 시복식과 일제강점기, 순교자신심의 확장과 순교자현양
1. 조선 순교자 시복식 이후 순교자신심의 확장과 순교자현양
2. 일제 강점 후반, 순교자신심과 순교자현양의 다양한 모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