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의 성격과 가부장제의 역사성, 근대성에 대하여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호주제가 우리의 역사적 ‘전통’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호주제는 합리적 이유 없이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는 제도이다. 호주제는 2008년 폐지되기 전까지 가부장제 가족제도로서 민법에 규정되었다. 호주제의 전통 논란은 남녀 차별이라는 불합리성에 대한 반발과 중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언급되고 있는 시댁과 친정 사람들의 호칭 문제는 호주제가 갖고 있었던 근본 문제의식에 대한 확장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가계계승법제의 역사적 탐구』는 호주제의 역사성, 즉 전통 여부에 대한 의문을 출발점으로 호주제의 성격, 즉 가부장제의 역사성과 근대성에 초점을 두어 저술되었다.
제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외래적 요소가 전통에 충격을 가하여 흔들릴 때에 행위 주체는 그 충격을 흡수하는 행동을 한다. 행위 주체는 외래의 요소를 일단 학습하고 이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모방하며, 나아가 종래의 것은 잊어버리고 외래의 요소를 자기 것으로 체화하여 ‘전통’으로 인식한다. 한국의 호주제 수용에서는 이 과정이 잘 드러난다.
그동안의 연구에서는 동적 과정을 간과한 채 전통인지 여부에 대해서만 논쟁을 펼쳤다. 따라서 역사 속에서 호주제가 형성되고 그것이 강화되는 계기를 규명하는 것이,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한 호주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호주제의 망령에서 벗어났고 역사적 교훈으로써 호주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이 책은 그 대안이 될 것이다.
책은 정긍식 교수의 지난 20년 동안의 연구를 모은 논문집으로 제사승계, 그 법적 표현인 ‘호주제’의 역사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는 법제사 분야에서 오랫동안 한국 가계계승의 법제 문제를 천착해 왔다. 법제사 분야의 연구자들이 매우 적은 상황에서 본 연구는 한국학의 학문적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다.
책은 15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호주제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살핀다. 16세기까지 남녀평등적 사회는 19세기 말 장자 우위의, 사실상 가부장제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ㆍ경제적 배경 하에 일본 메이지민법의 ‘가독’과 ‘가독상속제’가 식민지 사회에 쉽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이렇게 도입된 호주제는 식민지기에 재산상속을 둘러싼 분쟁과 그 최종 해결인 판결을 통하여 확대 재생산되었으며, 호주상속인의 권한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이전까지 ‘사실’로 존재하던 관행을 ‘법적’ 관습으로 승화하는 과정이었다.
전통은 ‘존재’하는 것이 아닌 역사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며 이는 호주제도 마찬가지다. 50년 동안의 논란을 거쳐, 역사적 산물이었던 호주제는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결국 역사는 반복된다. 미래 세대 가계계승의 지혜를 역사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긍식(鄭肯植, Jung Geung Sik)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모교에서 법과 역사를 아우르는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의 법치주의 탐구』, 역사학자와 함께한 『소송과 분쟁으로 보는 조선 사회』, 『조선의 일상, 법정에 서다: 조선시대 생활사4』 등이 있으며, 이문건(李文楗, 1494~1576)의 『묵재일기(默齋日記)』 역주의 연구책임자를 맡았다. 공역서로 『잊혀진 법학자 신번: 역주 대전사송유취』 등과 논문으로 「조선민사령과 한국 근대 민사법」, 「중국율령의 수용과 한국 전통사회」 등이 있다. 법학자로서 한국사에 기여하기 위해 연구와 동시에 법전과 법서를 공동 번역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구총서를 발간하며
머리말
서장 호주제의 역사성
제1부 역사적 연원
제1_ 제사승계인 선정법제
제2_가계계승법제
제3_ 종법적 제사승계와 가족의 변화
제2부 가계계승
제4_ 생양가 봉사 관습
제5_ 호주제도에 대한 역사적 성찰
제6_ 종중의 성격에 대한 비판적 검토
제3부 제사와 재산의 승계
제7_ 식민지기 상속관습법의 타당성
제8_ 제사용 재산의 귀속주체
제9_ 제사와 재산상속의 법적 문제
제4부 여성의 지위
제10_ 식민지기 여성의 호주상속권
제11_ 배우자의 대습상속권
결장 호주제와 식민지 유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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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속으로│
이 책의 주제는 제사승계, 그 법적 표현인 호주제의 역사입니다. ‘제사’는 경상도 시골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필자에게는 숙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추운 새벽 눈을 비비고 어른들을 따라 절을 하였으며, 의미도 모르는 축문을 듣고 자랐습니다. 날이 밝고서는 일가친척들에게 음복을 전했습니다. 때로는 가을 묘사에 험한 산길을 걷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전보다 많이 줄고 간소해졌지만, 저와 집사람이 잇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사는 제게,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6p,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