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련(江上蓮)』은 이해조(李海朝, 1869~1927)가 『매일신보』에 1912년 1월 1일부터 3월 16일까지 박기홍(朴起弘) 조(調) 『춘향전(春香傳)』을 옥중화(獄中花)』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직후인 3월 17일부터 4월 26일까지 33회에 걸쳐 연재한 작품이다.
『강상련』이라는 표제 아래 ‘심청가 강연(沈淸歌講演)’이라는 부제를 달고, ‘명창 심정순 구술(口述)’, ‘해관자(解觀子) 산정’이라는 설명을 덧붙인 채로 작품을 수록하였다.
이해조가 『심청가』에 붙인 『강상련』이라는 신소설식의 제목은 『춘향가』에 붙인 『옥중화』라는 제목처럼 주인공의 이름보다는 그가 성취한 삶에 주목함으로써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강 위의 연꽃’이라는 제목 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가 수궁 체험을 통하여 재생하고, 다시 강 위의 연꽃을 통하여 황궁에 가서 결국에는 아버지를 다시 찾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강상련』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서사에서 심청이가 초기에 겪는 고난보다는 그가 누리게 되는 신이한 체험과 행복한 결말에 초점을 둔 작명이라고 하겠다.
저자
이해조 산정
이해조는 인평대군 10대손으로 아버지 철용(哲鎔)과 어머니 청풍김씨(淸風金氏) 사이의 맏아들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재만은 대원군의 참모로 활동하다 1883년 민씨정권에 의해 처형되었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배워 19세에 과거 초시에 합격했으나 신학문과 접하면서 신소설 창작에 뜻을 두었다. 1903년 양기탁·주시경·노익형과 광무사를 조직해 국채보상의연금 모금운동을 벌였다. 1908년 대한협회 교육부 사무장 및 평의원으로 활동했고, 기호흥학회에 가입해 기관지 〈기호흥학회월보〉 편집인을 맡는 한편 기호학교 교감을 역임했다. 한말에는 애국계몽운동에 기여했으나 한일합병 이후 일제의 관직인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국악에 조예가 깊어 〈춘향전〉·〈심청전〉·〈흥부전〉 등의 판소리계 소설을 〈옥중화〉·〈강상련〉·〈연의 각〉 등으로 개작했다. 1927년 뇌일혈로 죽었으며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에 안장되었다. 그는 이인직과 더불어 신소설 대표 작가이며, 봉건적 백성을 근대적 국민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국권회복의 방법이라 주장했다.